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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교회에 다니던 때에 있었던 일
강병선 2017-09-17 08:07:49 72

--옛날에 교회 다니던 때 있었던 일-

 

 

 내가 처음 교회에 나가던 40여 년 전에, 이미 서울 바람이 불어 대던 시절이었지만, 당시에는 마을마다 몇 명씩의 청년들이 군에 영장을 기다린다거나 직장에 발령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친구들과의 대인관계가 좋았었나 보다.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고 핍박만 가하던 친구들이 교회에 나오고 있었다.

 교회에 청년들이 많아지자 면 소재지 중학교에서 우리 교회가 배구대회에 우승했었다. 골리앗과 같은 큰 면 소재지에 있는 교회와 이웃면에 있는 교회를 차례로 꺾고 우승 기분에 들떠있었다. 뒤풀이를 하기 위해 전도사님과 집사님들의 자전거를 앞세우고, 비포장 신작로를 경운기에 가득 올라탄 청년들이 승리의 환호와 찬송가를 부르며, 교회로 돌아오다 뜻밖의 사고가 있었다. 교회로 들어오는 샛길로 접어들다 경운기가 전복되고 말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언제나 좋은 일이 있고 난 뒤에 악한 무리가 공격하는 것인가, 신작로에서 교회로 들어가는 샛길에서 경운기 운전을 하는 집사님이 사람을 많이 태운 중력 때문인지, 핸들을 미처 다 꺾지 못하고 속력도 줄이지 못했었다. 경운기가 완전히 뒤집히는 전복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농로를 따라서, 조그만 개울이 흐르는 양 둑을 걸치고, 경운기가 전복되었던 것이다. 뒤에 적재함에 탄 우리는 개울 바닥으로 모두 다 떨어졌지만 다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가 개울 바닥에 차례차례 떨어져 포개져 있는 위로는, 경운기와 적재함이 뒤집어져 걸쳐져 있는 중에도, 엔진은 돌아가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전도사님과 우리를 인솔한 집사님들은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놀랜 상태이었다가, 경운기 적재함 아래쪽 개울 바닥에 차곡차곡 떨어져 있다가, 일어나 기어 나오는 우리를 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외치고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던 모습들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은 스릴 넘치는 만점 추억거리가 되고 있다. 그 무렵에 우리 동네 앞을 흐르는 섬진강 지류인 냇물에, 다리 공사(자재만 국가지원)가 있었다. 지금 같으면 다리 하나 건설하는데 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땅을 파는 굴착기 레미콘 기중기 등 모든 걸 기계가 손쉽게, 척척 처리해 주니 공사 기간도 얼마 안 걸리고, 사람도 크게 힘들지 안 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2년도 넘는 동안에 날마다, 다리 공사에 온 마을 주민이 동원 돼서, 힘든 울력을 하여야 했다. 당시에는 조그마한 작은(우리 마을 호수 48호) 마을뿐인 자연 부락 앞을 흐르는 강 위에 다리가 놓인 동네는 거의 없었다. 징검다리 위를 보릿단 짐이나, 볏단 짐을 지게에 짊어지고, 징검다리를 건너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해마다 되풀이되는 장마철이면, 징검다리가 떠내려가 버리니, 매번 징검다리 놓는 일을 마을 사람들이 울력을 해야 했다.

 마을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 같은 사람들이, 면사무소에 다니면서 마을 앞에, 다리를 놓아 주는, 국가 지원 사업을 받아 왔다고, 얼마나 생색을 내던지 당시의 주일만 되면 힘들었던 기억을 가끔 떠 올려 본다.

 어느 곳이나 흐르는 강을 따라서,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우리 마을 대부분의 농가도 강물 건너 건(乾) 들이라고 부르는, 들판에 농토를 갖고 있었지만, 우리 집은 강 건너 건(乾)들판 에는 한 평의 논도 없었다. 그 시절 나의 꿈은, 들에 있는 논에서 농사를 지어 보는 것이 꿈이었다. 그때만 해도 들 논 대 여섯 마지기만 있어도,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고, 열 마지기 넘는 농토가 있는 집은 부자라 했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날마다 다리 공사 하는 일에, 마냥 즐거울 수는 없었다. 다리를 이용하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몇 가구만 마을을 형성해도, 전액 국가 부담해서. 다리 공사며 진입로공사와 상수도며 전기공사를 해주니 참 살기 좋아진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은 일요일은 일을 중단하고 쉬는 공사 현장이 많지만, 그 당시는 오히려 일요일이나 공휴일은 학교나 직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쉬는 날이기 때문에 주일날이면 더 많은 사람이 울력에 참여했다. 나는 일요일 날은 다리 공사 울력에 나가지 않고, 교회에 가야 하므로 아버지께서 주로 나가셨다. 내가 교회를 나가기 위해서는, 다리공사장 옆을 지나가야 하므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야유가 빗발쳤다. ‘하나님이 어디 있나? ‘늙은 애비 일 시켜 놓고 놀러 다닌다. 등 이런 소리를 들어가면서 꼬박꼬박 교회를 다니면서도, 마음속은 늘 편치 못했다.

 왜냐면 마음속에 확신이 안서는 것이다. 나는 죄인이다. 내가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예수께서 속죄양이 되시고, 나의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것이 믿어지질 안 했기 때문이다.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이런 성경 말씀 들이 믿어져야 할 텐데, 도무지 믿어지지 않으니 나에게는 교회에 나가는 즐거움은 없었다. 그러나 마음속 한쪽에서는 부딪쳐 보자, 붙잡아 보자는 맘을 되새겨 보곤 했었다. 주일 날 교회에 다녀온 저녁식사 때는, 아버지께서 낮에 사람들로부터 쏟아졌던 야유와 질타, 아무렇게나 해대는 욕설들을 참아 가며 다 듣고 집으로 오신 아버지는 나에게 화를 쏟아 내곤 했었다.

 주일날 다리공사 울력을 하지 않고 교회에 가는 날은 마을 사람들은 대신 울력을 나간 아버지에게 인격을 짓밟는 막말을 해 댔던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께 퍼부은 막말들은 차마 여기에 필설 하기 어렵다. 강도 낮은 막말들만 여기에 나타내기로 하면 이렇다. ‘ㅇㅇ같은 놈을 자식이라 생각하느냐.’ 그 놈이 사람이냐 짐승만도 못한 놈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런 소리를 당신에게 하더라고, 나에게 고함을 질러 대곤 하였었다.

 다리 공사가 계속되는 2년 넘는 동안에는, 견디기 어려운 핍박을 참 많이도 당해야 했었다. 옛날에는 시골 동네 같은 데서는, 예수 믿기도 참 어려웠다. 동네 사람들과 이웃으로부터 그리고 친구들로부터, 받는 핍박은 말이나 글로서 다 표현 못 한다. 결국은 교회에 부흥집회 때, 아버지도 교회에 인도했으니 머리에 갓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차림은 아버지뿐이었다. 부흥회 기간 2~3번 나오시고 나이도 많고, 거리도 멀며 동네사람들 눈치도 보이고 모든 조건이 맞지 않았다. 직접 교회는 못 나가도 더듬더듬 기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힘들고 불우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을까, 싶다. 생활경제 문화 의(衣) 식(食) 주(宙)에 따른 모든 것이 빈약한 가운데, 그야말로 뼈가 부스러지는 힘든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 80 평생을 미처 날이 새기도 전부터 저녁까지 일만 죽도록 했지만, 생활에 달라진 변화된 기쁨과 행복이란 찾아오지 않았었다,

 아버지는 노년엔 치료했었더라면 시력을 회복할 수도 있었을 녹내장 질환으로 앞도 못 본체, 80년 가까이 살았던 고향을 떠나 산도 설고 물도 설은 타향 낯선 형님이 사셨던 곳에 골방에 어머니하고 두 노인이 살아야 했었다. 마치 옛날 벼슬아치들이 죄를 짓고 멀리 떨어진 오지 벽지나, 섬에 귀양살이 사는 것처럼 사시다가 눈을 감으셨다. 우리 아버님이 세상에서 불쌍한 삶을 사시다 가신 분이다고 나만의 생각인지 모른다. 비단(非但) 그때는 우리 아버지뿐 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교육과 의료 문화적인 혜택을 누려 보지 못 하고, 요즘의 어린이들 유치원 갈 어린 나이 때부터 죽는 날까지, 일하는 기계처럼 일만 하면서도 쌀밥 한 그릇 고깃국 한 그릇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고, 좋은 옷 한 벌 한 켤레의 좋은 신발 신어 보지 못하고, 음료를 마시면서 음악을 들어 본다는 취미 활동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부모님들은 예수님께로 인도를 했으니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현재 나의 고향 마을은 서울 같은 도시로 이주를 하고, 빈집도 늘어나고 30여 호도 못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현재는 교회 나가는 집이 절반 넘게 된다니, 실로 놀라운 변화다. 성탄절 때 새벽 송 불러 주러 갔다가, 괭이를 들고 쫓아 나오던 여자 후배 아버지도 부인을 여의고, 오래 살면서 교회에 다니다 세상을 떴으며, 누구보다도 예수 얘기만 나오면 앞장서 비웃던 사람도, 아들딸 들이 목사로 사모로 활동하고 있으니, 쥐구멍에 볕이 들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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